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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거세 된 욕망들의 왈츠..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by cluturedonna 2023. 3. 29.

거세 된 욕망들이 모여있는 곳

 
거세 된 욕망을 쉽게 찾을 있는 곳은 바로 집이다. 대부분은 가정을 이루고 구성원으로서 집단을 존속시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뒤로 제쳐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하 '에에올')'의 여러 가능성이 실현된 수 많은 우주들은 삶에 선택들로 인해 누락된 욕망들이다. 빨래방을 운영하며 가정을 이룬 에블린의 우주에 멋진 배우가 된 에블린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가족을 위해 다른 욕망들은 거세되었지만 가족을 선택한 것 역시 욕망 중의 하나다. 모든 욕망이 실현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선택'은 필요없다. 에블린은 가정을 이루는 것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하나의 우주가 생성됐다.
 
가족은 사회의 최소 집단이다. 사회에는 여러 집단들이 있고 개인은 집단을 위해 욕망을 억제한다. 그러기 위해서 법이 존재하고, 규제가 존재하고, 도덕, 예의, 체면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현재 생성된 이 우주, 지구 자체가 수 많은 욕망들이 거세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댓 원스의 한 장면
'에에올'의 한 장면

 

영화적으로 표현 된 보바리즘과 쿼터리즘

 
 
현재에 불만족하고 도피하며 끝없이 욕망한다는 의미를 가진 보바리즘이란 말은 소설 '보바리 부인'에서 나왔다.시골 처녀였던 엠마는 소설 책을 통해 화려한 귀부인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여자들을 알게 되고 자극적인 삶을 원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현재에서 권태를 느낀다.
 
현대 사회는 엠마가 책을 통해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욕망들을 보여준다. 화려한 것들과 극적인 것들을 언제 어디서건 쉽게 볼 수 있다. 그것이 실제이든 꾸며진 것이든 허구이든 상관없다. 보편적 인간은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것들에 본능적으로 끌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과 비교할수록 현재에 권태를 느낄 수 밖에 없다. 항상 덜 화려하고 덜 극적이기 때문이다. 인내심을 잃어버린, 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현상을 뜻하는 '쿼터리즘'엔 이런 이리저리 날뛰는 욕망이 담겨있다.
 
많이 알고 많이 봤기 때문에 현대인은 다양하게 욕망할 수 밖에 없다. 일평생 깊은 산 속에서 산 사람은 바랄 수 있는 것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바랄게 없다. '에에올'에서 다른 우주로 이리저리 점프하는 것은 다양하고 수 많은 욕망들에 눈과 마음이 쫒아다니는 것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상태를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영화 마담보바리의 한 장면
영화 '마담 보바리'의 한 장면

 

절대적인 골든 에이지는 없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은 2010년대를 살지만 소설 작가 지망생으로서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그 시간과 그 장소에는 해밍 웨이를 비롯해 오손 웰즈, 피카소, 달리,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예술가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황금시대(golden age)는 1920년대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당시에 깊숙히 속해있던 아드리아나는 그 시대를 황금시대로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그 시대를 황금 시대로 여긴다. '에에올'에서 웨이먼드 왕은 에블린과 결혼하지 않은 우주에서 사회적으로 멋지게 성공하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에블린에게 '다른 삶에서는 그냥 당신과 빨래방이나 하고 세금이나 내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개인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황금 시대는 특정지어질 수 없다.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황금시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시시해보이는 나의 현재도 누군가에게는 황금시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황금 시대가 주관적인 것이라면 자신이 시간과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은 아드리아나의 말을 듣고 1920년대에 비해 시시해 보이던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에에올'의 이블린 역시 웨이먼드의 왕의 말을 듣고 수 많은 선택들로 생성된 현재가 지닌 의미를 깨닫는다. 그것은 선택으로 생성된 각각의 현재가 다른 현재에 비해 더 낫지도 더 시시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세된 욕망때문에 후회할 필요가 없다. 선택한 현재에 의미를 부여는건 현재의 자신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한번에 이룬 사람보다 나은 사람

 
 
'에에올'의 조부 투파키는 모든 우주를 실시간으로 오갈 수 있으므로 모든 욕망을 실현했을 때의 모습이다.이 모든 욕망을 실현해 본 조부 투파키는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더 이상 바라는게 없기 때문이다. '보바리 부인'의 엠마는 화려하고 극적인 것을 끝없이 무리하게 추구하다 파멸을 겪게 된다. 끝없이 무리하게 욕망하는 것도 설사 그 모든 것들이 이루진다고 하더라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욕망' 자체를 나쁘게 보라는 것은 아니다. '불'은 쓰기에 따라 뭔가를 파괴할 수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조부투파키를 보면 욕망을 실현한 상태보다 갈망하는 상태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엠마를 보면 그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무리하게 끝없이 갈망하는 것 또한 삶에 의미를 갉아먹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재에 완전히 만족하라는 것도 끝없이 욕망하라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인간이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욕망을 특히 현대인이라면 광폭하게 진동하는 욕망을 가다듬어야한다. '에에올'에서는 자신의 선택들로 실현시킨 욕망인 곧 현재에 의미를 가짐으로서 욕망의 진폭이 가지런해진다. 에블린은 세계를 구해야한다는 '욕망'으로 우주를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결국 자신의 딸을 사랑하고 이 가족들을 가지게 된 모든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한번에 이룬 사람보다 삶을 더 가치있게 사는 사람이 된다.
 

에브리씽 에브레웨어 올 댓 원스의 한장면
'에에올'의 에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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