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다."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자 한 말이다. 이 말은 바로 앞에 앉아있던 마틴 스코세지가 한 말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지만 이 말 자체도 울림이 크다. 창작자로서 가장 큰 영예를 얻은 사람이 개인마다 창조성을 발현할 이야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식인 상어, 외계인, 로봇, 역사극, 초능력, 공룡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조적 이야기들과 비주얼을 만들어냈던 거장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스필버그가 영화 인생 후반기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가장 창조적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수 십년간 농축된 영화 기술로 풀어낸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과 창조성
'이야기(Story)'라는 것은 수 천년 동안 발전했고 다양하게 다뤄졌다. 장르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고 모두 익숙해진 포맷을 갖췄다. 사람들은 어디서 눈물 꼭지를 틀려하는지 어디 쯤에서 귀신이 튀어나오는지 등 수 많은 이야기들에 익숙해졌다. 요즘엔 리메이크,리부트,스핀오프 등으로 식상한 이야기들을 변주하려고도 하지만 그런 시도마저도 식상해졌다.
제작 도구와 플랫폼의 발달로 컨텐츠들은 마구 쏟아지고 있다. 대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창조적인 이야기는 매우 희귀해졌다. 신박한 소재와 자극적인 전개로 고루한 이야기판에 충격을 줄 수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도 자체가 너무 많아 창조적이지 않아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작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런 상황을 꼬집었다. 단순히 꼬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컨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힌트를 멘토적인 입장에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레디플레이어 원의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각각의 미션에서 역발상, 용기, 과정의 즐거움과 협력을 통해 재창조의 땅(가상현실) 오아시스를 손에 거머쥔다. 오아시스는 창조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원칙을 지킨 파벨만스
스필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역발상, 용기, 과정의 즐거움과 협력을 통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고 파벨만스는 그 원칙을 아름답게 지켰다.
역발상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흥미로운 상상력과 기술력이다. 이동진의 말에 따르면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그로 인해 생겼다고 한다.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는 그에 대한 기대이자 어쩌면 족쇄다. 이번 작품은 상상력보다 기억에 의존했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술력보다 자신이 어린 시절 시도했던 기초적인 영화 기술을 재미있게 보여줌으로써 대중의 기대에 대한 역발상을 실현시켰다.
용기
'파벨만스'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창작자로서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부모가 자신에게 준 트라우마를 아름답게 재구성하여 영화에 담아냈다. 왜 아름다웠냐고 물어본다면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렌즈 밖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한 여자와 남자로 바라본다. 가족 구성원이 아닌 멀리서 개인들을 바라볼 때 좀 더 공정해진 이해를 담게 된다. 그로인해 상처에 대한 치유, 이해와 용서가 아름답게 이뤄졌다.
과정의 즐거움
이 영화에서 어린 시절 스필버그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나온다. 시도때도 없이 여동생과 가족들을 마구 찍어댔고, 휴지를 둘둘 말아 미라를 만들거나 재밌게 찍힐만한건 뭐든 놀이처럼 시도했다. 실제로 만들었다는 그의 10대 시절 서부 영화가 재현되었는데 지금의 기술력과 작품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조악하지만 총격전을 더욱 실감나게 만들려는 시도와 작업 과정에는 기발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협력
이 영화의 겉모습은 담백해보이지만 내공은 단단하다. A.I이후로 20년만에 각본에 참여한 스필버그는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토니 커쉬너와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무려 53회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5회 수상한 영화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존 윌리엄스가 음악에 참여했다. 촬영감독 야누즈 카민스키, 마이클 칸 편집감독, 릭 카터 프로덕션 디자이너까지 스필버그와 오랜시간 같이 작업을 해온 사람들과 뛰어난 배우들까지..이 한 작품을 위해 모였다.
사실보다 중요한 것, 이야기꾼의 역할
영화에서 학생 스필버그는 졸업 작품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덩치큰 친구를 영웅처럼 묘사했고, 비쩍 마른 애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똑같은 현실도 연출자의 입장과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 이 '파벨만스'라는 작품도 기억에 의존했지만 결국 사건을 스필버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다. 일본의 거장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직접 쓴 자서전의 제목을 '자서전 비슷한 것'이라고 지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못박아둔 것이다.
스필버그의 학생 시절 졸업작품과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 제목은 보는 이에게 같은 걸 요구한다. 그것은 "이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마세요"이다.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보다 이야기를 담아낸 사람의 생각과 그 생각이 주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스필버그는 이야기꾼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창의적인 카드를 꺼내들었고 아름답게 완성시켰다. 깊은 상처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소재가 될 수 있다면 팍팍한 현실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이 이야기꾼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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